수원 화성은 조선 정조 시대에 건설된 성곽으로, 정치적·군사적·경제적 목적을 모두 고려하여 축성되었는데 정조는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묘를 양주에서 수원의 화산으로 옮기면서, 이를 방어하고 도시를 발전시키기 위해 화성을 건설했습니다. 화성은 단순한 방어 시설이 아니라, 신도시 개념을 적용한 계획적인 도시로 정조는 강력한 왕권을 확립하고 당쟁을 줄이기 위해 수도 남쪽에 새로운 중심지를 만들고자 했으며, 이를 위해 규장각의 문신 정약용이 『성화주략』을 참고하여 축성 계획을 세웠습니다. 오늘은 수원화성의 사통팔달의 상징인 남문인 팔달문에 대해서 알아볼게요.
1.수원화성의 남문 팔달문
팔달문은 보물 402호로써, 수원화성의 남쪽 문으로 이름은 서쪽에 있는 팔달산의 명칭에서 유래한다. 문 위의 건물은 앞면 5칸 옆면 2칸의 2층 건물이여 지붕은 우진각 지붕으로 앞에서 보면 사다리꼴을 하고 있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기둥 위는 물론 기둥 사이에도 공포(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짜넣은 나무 구조물)를 배치한 다포 양식이기에 더욱 더 화려함을 뽐낸다.
2. 사통팔달의 상징
팔달문은 수원화성 남쪽 지역인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의 백성들이 이 문으로 통행함으로써 사통팔달 통한다는 의미로 만들어졌다고 본다. 성문 전체 모습은 장안문과 매우 닮았으며 성문의 바깥 쪽에는 벽돌로 옹성을 쌓았고, 옹성의 출입문이 중앙에 나 있는 형태이다. 또한 옹성 위에 오성지를 설치한 것도 같다. 팔달문 근처에는 길을 사이에 두고 지동시장과 영동시장이 있는데 팔달문의 시장들은 모두 수원화성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성곽이 있는 도시에서는 시장이 성문 밖에 있는 것이 보통인데 팔달문 주변에는 성안 시장과 성 밖 시장이 모두 있었다. 지금도 팔달문 주변의 시장에 가면 재래시장의 모습을 볼 수 있다.
3. 팔달문 동종
팔달문 동종은 수원화성 축성과 동시에 건조된 성의 4대문의 남문인 팔달문 2층 누상에 달려 있는 종으로 1976년 경기도 유형문ㄴ화재 제69호로 지정되었다. 종의 윗부분에는 내부에 글씨를 넣은 수십 개의 문양을 두 줄로 나란히 돌렸으며 종의 몸통 부분에는 이 종을 주조한 장소와 연대, 유래, 주조자들의 이름을 새긴 문장이 있다. 현재 이 종의 소재지는 수원박물관이다.
4. 오성지에 대해
오성지란 팔달문과 장안문의 옹성 위에 있는 다섯 개의 구멍이 있는 시설물을 말한다. 수원화성 성곽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시설이다. 적이 성문에 불을 지르면 물을 부어 성문을 보호하려는 의도로 설치한 것이다. 하지만 오성지는 정약용이 처음 설계안과 달리 저장된 물이 빠르게 흘러 내려 불을 끌 수 없게 만들어져서 후에 정약용이 수원화성을 둘러보다가 이를 발견하고 안타까워하며 탄식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축성 과정에서는 거중기와 녹로 같은 혁신적인 기계가 사용되어 공사 효율을 높였으며, 동서양의 건축 기술이 접목되었습니다. 또한, 성곽 내부에는 행궁과 다양한 행정·군사 시설이 배치되어 있어 단순한 성곽이 아니라 도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화성은 1794년부터 1796년까지 2년 반 동안 축조되었으며, 이후에도 지속적인 보수와 복원이 이루어져 현재까지도 그 원형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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