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감상] 샤갈 눈내리는마을? 나와 마을 ,비테프스크 위에서, 작품설명 작가소개 얽힌이야기 소장미술관

마르크 샤갈(Marc Chagall, 1887~1985)은 20세기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거장 중 한 명으로, '색채의 마술사'라는 별명처럼 자유롭고 환상적인 색채를 통해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을 구축했습니다. 그의 작품은 러시아 유대인 공동체에서 보낸 유년기의 기억, 고향에 대한 향수, 사랑하는 아내 벨라에 대한 영원한 사랑, 그리고 성경의 이야기가 한데 뒤섞여 신비롭고 몽환적인 세계를 펼쳐 보입니다. 한국에서 샤갈의 작품 중 특히 유명한 것은 '눈 내리는 마을'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그림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샤갈의 작품 목록에는 '눈 내리는 마을'이라는 제목의 그림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제목은 한국의 시인 김춘수(1922~2004)가 샤갈의 그림 나와 마을(1911)을 보고 영감을 받아 쓴 시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시가 널리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나와 마을을 '눈 내리는 마을'로 기억하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김춘수 시인의 시에 영감을 준 샤갈의 대표작 나와 마을을 중심으로 샤갈의 작품 세계와 얽힌 이야기를 깊이 있게 다루고자 합니다.

 

1. 작품 설명 <나와 마을>(I and the Village), 눈 내리는 마을? 작품의 구성요소와 상징

나와마을

 

<나와 마을>은 샤갈이 1911년 파리에서 제작한 초기작으로, 그의 고향인 벨라루스의 유대인 마을 비테프스크(Vitebsk)에 대한 그리움을 담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큐비즘(입체주의)의 영향을 받았지만, 피카소와 브라크의 분석적 큐비즘과는 확연히 다른 샤갈만의 환상적인 큐비즘을 보여줍니다.

초록색 얼굴의 남자와 하얀 염소

화면의 중앙을 차지하는 두 개의 큰 얼굴은 샤갈 자신과 그의 고향 마을을 상징합니다. 초록색 얼굴은 샤갈의 자화상으로 해석되며, 하얀 염소는 유대인의 전통과 고향의 순수한 삶을 나타내는 상징입니다. 유대인 전통에서 염소는 제물이나 희생양을 의미하기도 하며, 샤갈의 작품에서 자주 등장하는 동물입니다.

 

교차하는 시선

샤갈의 얼굴과 염소의 얼굴은 서로 마주 보고 있습니다. 이는 서로 대화를 나누는 듯한 구도로, 샤갈이 고향에 대한 기억과 감정을 나누고 있음을 표현합니다. 염소의 얼굴에는 작은 염소 젖을 짜는 여인의 형상이 들어가 있는데, 이는 고향 마을의 풍경을 상기시키는 회상적 요소로 볼 수 있습니다.

 

뒤집힌 집들

그림 속 여러 개의 작은 집들 중 일부는 거꾸로 서 있습니다. 이는 고향을 떠나 파리에 정착한 샤갈의 혼란스러운 심리와, 기억 속에서 재구성된 비현실적인 풍경을 나타냅니다. 중력을 무시한 듯한 자유로운 배치는 샤갈 작품의 특징 중 하나입니다.

 

생명의 나무

샤갈의 손에 들려 있는 작은 나무는 '생명의 나무(Tree of Life)'를 상징합니다. 이는 유대교 신비주의인 카발라(Kabbalah)의 핵심 개념으로, 우주의 중심과 생명의 근원을 의미합니다. 샤갈은 이 나무를 통해 자신의 예술적 영감과 고향의 정신적 뿌리가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다채로운 색채와 기하학적 형태

샤갈은 붉은색, 초록색, 흰색, 푸른색 등 강렬한 원색을 사용하여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동시에 원, 삼각형, 사각형 등의 기하학적 형태를 사용하여 대상을 재구성함으로써 큐비즘적인 요소를 가미했습니다. 그러나 샤갈의 큐비즘은 대상의 해체와 분석보다는, 기억과 감정의 재구성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었다는 점에서 피카소와 차별화됩니다.

 

2. 작가 소개: 마르크 샤갈의 생애와 예술 세계

생애

마르크 샤갈은 1887년 러시아 제국(현 벨라루스)의 작은 유대인 마을 비테프스크에서 태어났습니다. 가난한 유대인 가정에서 자란 그는 어린 시절부터 예술에 대한 꿈을 키웠지만, 당시 유대인에게는 미술 교육의 기회가 매우 제한적이었습니다.

비테프스크 위에서

 

그는 어렵게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미술학교에서 공부한 후, 예술의 중심지인 파리로 떠나게 됩니다. 파리에서 샤갈은 아카데미 쥘리앙에 등록하고 당시 유행하던 입체주의(Cubism)와 야수파(Fauvism)의 영향을 받습니다. 하지만 그는 현실의 재현을 거부하고, 어린 시절의 기억과 꿈, 환상, 그리고 유대인의 전통을 결합한 자신만의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해 나갑니다. 1914년 고향으로 돌아와 첫사랑인 벨라 로젠펠트와 결혼하며, 이 시기의 행복은 그의 작품에 풍부한 색채와 낭만적인 분위기를 불어넣습니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 제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 혁명의 격동기를 겪으며 샤갈은 큰 어려움을 겪습니다.

 

1922년 파리로 다시 돌아와 활발한 작품 활동을 이어가지만, 나치의 유대인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하게 됩니다. 1944년, 그의 삶의 영원한 영감이자 뮤즈였던 아내 벨라가 사망하자, 샤갈은 깊은 슬픔에 빠집니다. 이 시기 그의 작품은 어둡고 비극적인 분위기를 띠게 됩니다. 하지만 1952년 재혼 후 다시 안정을 찾고, 말년에 이르기까지 스테인드글라스, 무대미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며 20세기 미술의 거장으로 확고한 입지를 다졌습니다. 그는 1985년 프랑스에서 98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예술 세계

샤갈의 예술은 크게 세 가지 핵심 요소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그의 작품에는 고향 비테프스크의 풍경, 둥근 지붕의 목조 가옥, 마을 사람, 동물(소, 염소, 닭) 등이 자주 등장합니다. 이는 유년 시절의 순수함과 잃어버린 고향에 대한 영원한 그리움을 표현합니다. 아내 벨라와의 사랑은 샤갈 예술의 가장 중요한 주제입니다. <생일>(1915), <산책>(1917~1918) 등 그의 작품 속 연인들은 중력을 거스르며 하늘을 날아다니는데, 이는 사랑이 주는 황홀감과 자유를 상징합니다. 유대교 신앙은 샤갈 작품의 중요한 근간입니다. 성서의 이야기가 주요 모티프로 등장하며,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형상을 통해 유대인의 고통과 비극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3. 작품 얽힌 이야기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앞서 언급했듯이,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은 마르크 샤갈의 작품 제목이 아니라, 한국의 시인 김춘수가 쓴 시의 제목입니다. 김춘수는 샤갈의 그림 <나와 마을>을 보고 깊은 감동을 받아 이 시를 창작했습니다. 그는 <나와 마을>의 몽환적인 분위기 속에서 겨울의 끝자락, 3월에 내리는 눈을 상상하며 생명의 순환과 희망을 노래했습니다.

 

시와 그림의 상호작용

김춘수는 시 속에서 "샤갈의 마을에는 3월(三月)에 눈이 온다"고 읊으며, 그림 속 초록색 얼굴의 남자를 "봄을 바라고 섰는 사나이"로 해석합니다. 그리고 "눈은 수천 수만의 날개를 달고 하늘에서 내려와 샤갈의 마을의 지붕과 굴뚝을 덮는다"고 묘사하며, 샤갈의 그림에 시인의 상상력을 더해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했습니다.

 

대중적 인지도

김춘수의 시가 널리 사랑받으면서, 샤갈의 그림 <나와 마을> 또한 '샤갈의 눈 내리는 마을'이라는 이름으로 한국 대중들에게 익숙해졌습니다. 2000년대 초에는 이 이름으로 된 카페가 전국 곳곳에 생겨날 만큼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처럼 시와 그림이 만나 새로운 문화적 의미를 창출하고, 원작의 제목을 뛰어넘는 상징적인 이름으로 대중에게 각인된 흥미로운 사례입니다.

 

4. 작품 소장 미술관: 뉴욕 현대미술관(The Museum of Modern Art, MoMA)

샤갈의 대표작 <나와 마을>은 현재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뉴욕 현대미술관은 1929년, 현대미술의 중요성을 인식한 세 명의 여성 후원자(애비 알드리치 록펠러, 릴리 P. 블리스, 메리 퀸 설리번)에 의해 설립되었습니다. 이들은 인상주의 이후의 회화와 조각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미술관의 필요성을 절감했고, 이는 현대미술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MoMA는 19세기 후반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서양 현대미술의 주요 작품들을 망라하고 있습니다. 회화, 조각, 드로잉, 판화, 사진, 건축, 디자인, 영화, 미디어 아트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약 20만 점 이상의 방대한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주요 소장품

MoMA는 현대미술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걸작의 보고'로 불립니다.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파블로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 앙리 마티스의 <춤>, 클로드 모네의 <수련>, 앤디 워홀의 <캠벨 수프 캔> 등 서양 미술 교과서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주요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샤갈의 <나와 마을> 역시 MoMA의 중요한 소장품 중 하나로, 현대미술의 흐름을 보여주는 핵심적인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MoMA는 단순한 작품 소장을 넘어, 현대미술의 최신 경향을 소개하고 예술적 논의를 활성화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합니다. 다양한 기획 전시와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대중에게 현대미술을 친숙하게 다가가게 하며, 현대미술의 발전과 확산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샤갈의 <나와 마을>을 감상하고자 한다면, 뉴욕 현대미술관을 방문하면 됩니다. 이곳에서 샤갈의 고향에 대한 향수와 독창적인 상상력이 담긴 작품을 직접 만나볼 수 있습니다.